* 소아청소년 우울증에 대한 이해
일반인들이 우리 아이들에 대하여 가지는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어리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거나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의 보고에 의하면 소아청소년의 10-15%는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고 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술이나 마약에 쉽게 노출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05년도 서울시 소아청소년광역정신보건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6-17세 아동의 7.4%가 소아우울척도에서 우울증상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춘천시 정신보건센터가 춘천시 34개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2005년에 시행한 조사에 의하면 24.3%가 소아우울척도에서 우울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렇다면 우울증이 왜 문제가 되는가?
우리 아이들이 소아청소년 시기에 겪지 않았으면 하는 문제 중에는 학업부진, 대인관계 갈등, 학교부적응, 청소년 비행, 약물남용, 인터넷 중독 등이 있는데 모두 직간접적으로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 우울증의 진단기준
지난 2주 동안 다음의 증상들 가운데 5가지 이상에 해당되며, 우울한 기분과 흥미 또는 즐거움의 상실 가운데 적어도 1가지 이상을 포함할 것
1) 거의 매일, 하루의 대부분 동안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 주관적 보고(예: 슬픔, 공허함) 또는 타인에 의해 관찰됨(예: 눈물이 많음)
- 소아, 청소년의 경우 짜증이 많고 예민한 기분
2) 거의 매일, 하루의 대부분 동안 거의 모든 활동에 대해 흥미와 즐거움이 현저히 저하됨
3)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중임에도 의미 있는 체중의 저하, 또는 체중 증가(한 달에 기존 체중에서 5% 이상 변화) 또는 현저한 식욕의 증가 또는 감소
- 소아의 경우 기대되는 만큼의 체중 증가가 일어나지 않음
4) 불면 또는 지나치게 잠이 많이 옴
5) 정신운동 초조 또는 지체
6) 피로, 에너지 저하
7) 무가치한 느낌 또는 부적절할 정도로 지나친 죄책감
8) 생각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의 저하 또는 결정을 내리지 못함(우유부단해짐)
9)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특별한 계획이 없는 반복적인 자살 사고, 자살시도, 또는 자살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초등학교 5학년인 A는 작년까지는 학교나 집에서 나무랄 데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5학년이 되고 1개월이 경과하면서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고, 수업 시간에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하였지만 이유를 묻는 부모에게 그냥 가기 싫다는 말 이외에는 명확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의 일기장에 "모든 게 너무 힘들어요. 아마 나는 곧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엄마 아빠는 내 기분을 이해 못할 거예요."라고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1학기 말에 A가 받아온 성적표는 모든 일에 의욕이 많이 줄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평소 좋아하던 축구도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는 캠프도 가지 않은 채 하루 종일 TV만 보며 지냈으며, TV를 못 보게 하면 짜증을 부리거나 신경질을 내곤 했다. 잠자는 시간이 많이 늘었고, 평소에 비하여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먹곤 했다. 원래 성격이 꽤 사교적인 아이였으나, 학교 친구들과 만나거나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없어졌다.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던 부모는 춘천시정신보건센터를 방문하게 되었고, 우울증 진단 하에 정신과에 의뢰되었다.
학령기인 초등학교 때 보이는 우울증상은 성인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일단 학교생활에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며, 성적이 떨어지거나 또래 관계를 피하는 경향이 생긴다. 우울한 기분보다는 짜증스러운 기분을 더 많이 호소한다. 집에서는 자주 신경질을 내거나 형제들과 싸움을 하기도 하고 부모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어린 아동에서는 신체적인 증상 즉 복통, 두통, 식욕 변화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행동적인 측면에서는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집에 늦게 들어오기도 한다. 때로는 물건을 훔치거나 동물을 학대하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대부분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는 조금 더 행동화하는 양상으로 표현되는데 기분의 변덕이 심하거나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하게 된다. 술이나 담배 혹은 약물 남용이 증가하고, 학교를 중퇴하거나 가출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사고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자살에 성공하는 예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1학년인 B는 춘천시정신보건센터가 시행하고 있는 청소년 우울증 선별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보여 학교 상담실에서 임상심리사와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16년 동안 우울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행복한 적이 없어요." B는 학교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에 교우관계가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외톨이는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B가 고백한 내용은 다소 의외였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나에겐 좋은 일이 아무것도 생길 것 같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처럼 남자친구를 사귀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떤 남자애가 나 같이 형편없는 애를 좋아하겠어요?” 심리검사에서 우울감, 불안감,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 부모에 대한 애정욕구의 좌절감 등의 소견을 보였다. 임상심리사는 부모와 면담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B는 부모가 그런 관심을 보일 것 같았으면 자신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라면서 극구 거부하였다.
소아청소년에서 보이는 이런 증상들을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평가하였을 때 우울증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사실 우울한 기분이 있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나타는 적응장애는 우울감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스트레스 요인이 없어지면 6개월 이내에 증상이 사라진다. 또 청소년 비행이나 약물남용이 모두 우울증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했을 경우에 생기는 많은 문제들은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때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생물학적, 심리학적, 환경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생물학적인 요인으로는 유전적인 요소가 있는데 부모가 우울증이 있으면 자녀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실제로 우울증은 기분조절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고 밝혀져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물질이 세로토닌(Serotonin, 5-HT)과 노르에피네프린(NE)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는 뇌영상학이다. 우울증에 걸린 환아의 뇌는 PET 사진에서 정상아동과 다른 모습을 보이며, 호전되면서 다시 정상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는 심리적인 요인이다. 자기주장이 약하거나 의존적인 아이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매우 취약한 양상을 보인다. 부정적이거나 포기를 잘 하는 아이도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거나 자기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아이는 좌절했을 때 자기비하에 빠지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환경적인 요인이다. 어렸을 때 부모나 가까운 사람과 헤어지거나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경우에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신체적인 학대나 성폭력을 당한 아이는 거의 우울증으로 진행되며, 특히 알코올 중독이나 성격 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우울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무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높으며, 이에 따라 아이가 우울증이 될 확률도 매우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아청소년의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울증의 치료에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놀이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의 정신사회적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울증은 생물학적인 병리가 어느 정도 밝혀져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는 가장 근간이 되는 치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에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 방법이다. 또 우울증에서 흔히 동반되는 불안, 초조, 신체증상 등의 증상의 호전에 매우 효과적이다.
일반인들은 약물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항우울제는 중독이나 의존이 된다거나 부작용이 많고 독하다는 편견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감기약을 복용했을 때 경험하는 것처럼 약간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감추어지거나 저절로 낫는 것이 아니며 우울증이 지속될수록 뇌세포에 어떤 식으로든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소아청소년의 경우 그 상처는 성인기까지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약물치료의 여부는 정신과 전문의를 방문하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약물치료 외에 어린 아동 또는 언어발달이 부족한 경우 놀이치료를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놀이치료는 아동의 감정을 표현하고 갈등을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정신적 갈등이 주된 문제인 경우 역동적 정신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건강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행동치료는 우울장애 아동의 인지적 왜곡 및 결손을 발견하고 교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아동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모니터하고 기록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가족 내의 갈등이 아동의 주된 문제일 때는 가족치료를 시행한다. 아동의 치료와 병행해서 부모를 치료 과정에 참여시키며, 가족 내의 의사소통과 문제해결 방식을 교정하는 데 초점을 둔다.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은 자살이다. 최근 청소년에서 자살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서 10대의 사망 원인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보고에 의하면 우울증을 가진 소아청소년의 70%에서 자살사고를 갖거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매우 충동적이어서 알코올 복용 시에 그 위험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설마 하는 심정에 방치된 우리 아이들과의 대화단절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울한 아이들을 위하여 부모나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기분을 이해하고, 돕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해 주는 것이다. 작은 성공이라도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 것이다. 대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인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아이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 보면 훨씬 더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빨리 정신과 전문의를 방문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에서 우리는 뭔가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더욱 더 말이다.
정신과 이강욱 교수





















